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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Back to the 20's] 성문희 교수님의 20대 청춘 page

날짜 2013.09.29 조회수 16394

 

가을이다. 부쩍 생각이 많아지고, 여유롭지 않은 여유 속에서 스스로가 무기력해지는 요즘, 'Back to the 20s' 7번째 주인공 성문희 교수님을 만나고 왔다. 청춘,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여유를 가지고 교수님의 청춘 페이지를 들여다보자.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스 후에 등재되신 성문희 교수님의 청춘 페이지는 우리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업에 대한 압박감으로 절망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교수님의 이야기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발효융합학과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발효융합학과를 신설을 하게 된 계기와 과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평소 발효를 통해서 바이오소재를 생산하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중 우리 국민대학교가 서울시의 바이오 소재 혁신 크러스터 사업단이 되었어요. 우리 국민대학교가 최초로 주관이 되어서 진행하는 바이오 사업단이었기 때문에 굉장한 의미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발효융합학과가 신설이 되었지요. 올해부터 발효융합학과에서 바이오 발효융합학과로 명칭이 변경되었어요. 기존의 커리큘럼에서 바이오 소재와 바이오 의학기술을 가미하게 되면서 우리 발효융합학과가 국민대학교의 신성장 대표브랜드로 자리잡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과거로 돌아가서 대학시절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수님께서 했던 전공은 무엇이었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셨나요?

대학시절 유용 미생물인 장내 미생물에 대해서 연구를 했었고, 장내 미생물 중 비피더스균에 대한 연구전공을 가졌어요. 이것을 선택하게 된 가장 기본적인 동기는 무엇이냐면 솔직하게 지도교수님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때 당시 지도교수님은 한국야쿠르트에서 연구소장을 하시다가 학교로 오셨는데, 실제적인 발효미생물에 대해서 너무나 잘 가르쳐 주셨어요. 다양한 강의를 통해서 미생물학이라는 게 단순한 미생물연구뿐만 아니라 발효식품을 통해서 인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셨던거 같아요.


교수님이라는 진로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있으셨나요?

어느 학교, 학과에도 1기 졸업생이 있죠. 1기로서 과를 선택한다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인 모험이라고 생각해요. 학과 1기로 입학하면서, 앞으로의 장래나 미래분야에 대하여 고민과 걱정으로 불확실하게 살았었어요. 하지만 학과생활을 통해서 학과 1기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학과에 대한 소망을 키워갔죠. 1기 생활을 해서 그런지 2기,3기,4기 후배들에게 내가 전공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처음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똑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을 하여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되겠거니 생각했었어요. 그러던 중 한번은 후배들에게 미생물학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그 수업에 대하여 굉장히 열심히 듣고 감동을 받는 것을 보고 내가 남을 가르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던거 같아요. 대학원에 들어가 미생물학 실험조교로 일을 하면서 교수라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던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박사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고 들었는데요, 일본 유학시절은 어땠나요?

내가 청춘시절을 보냈던 그때 당시에는 유학이라는 게 지금처럼 자유롭지는 않았어요. 군 제대 후 학업에 매진하면서 일본의 문부성 장학생에 선발됐어요. 문부성 장학생은 자신이 선택한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할 수가 있어서 학풍도 있고 노벨상을 가장 많이 탄 교토대학을 선택했죠. 교토대학에서 나는 지금의 집사람을 만났어요. 서로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위안받을수 있는 상대방이 있다는 게 굉장히 힘이 많이 되었고, 대학원생 때에 장내미생물학을 연구전공 하면서 일본어 원서나 책을 통해서 일본에 대한 것을 익숙하게 접하다보니 언어적인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하 자랑 같지만 일본 유학시절 내가 인기가 많았었던 이유도 일본어를 잘해서였어요. 일본에서 연구했던 방이 미국, 프랑스, 독일, 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왔을 정도로 세계적인 모임이었어요. 유학시절이 단순하게 무엇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거 같아요. 또 내가 옛날 역사에 대한 히스토리를 좋아해서 어떻게 보면 지금 현재의 명소 역사적인 장소들이 우리나라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이 나한테는 굉장히 재밌었거든요. 유학시절에 대한 추억이 굉장히 많아요.



대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하나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대학시절 전반기 1-2학년 때에는 자유생활을 만끽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던것도 사실이예요. 군대를 다녀온 후에 3학년 1학기로 복학하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최선을 다해서 학업에 열중하면서 처음으로 1등을 했고,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1-2학년의 자유로웠던 대학생활이 있었기 때문에 제대 후에 학업에 충실할 수 있었겠죠. 장학금을 받으면서 하면 된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4학년때 우연찮은 기회로 전국대학교학술발표대회에 나가서 우수상을 받았어요. 이게 대학시절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추억이예요. 왜냐하면 이 대회에 나가기 전에는 내가 남앞에서 발표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었거든요. 그 하나의 자리가 나를 굉장히 많이 변화하게 했고, 남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발표할 수 있는 내 자신이 스스로에게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다보면, 어려움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요, 교수님의 청춘시절 어려운 벽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어려운 벽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은 수도 없이 많았을 거예요. 이제껏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젊음이라는게 어떻게 보면 좌절의 연속인 것 같아요. 내가하고 있는 기대에 맞지않아 좌절하게되고 다시 나에게 하문을 하다보면 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굉장히 괴로울 때가 많았어요. 그때 그 벽을 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괴로워만 해서 될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였어요. 어려운 때일수록 돌진해보자! 예를 들어서 연구가 잘 안된다던지 뭐가 잘 안될 때 좌절해서 포기하거나 멈추기보다는 돌여 그 일에 매진하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겪기 어려운 생활 중 하나는 군생활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통제된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다보니까 신념이라는게 생겼어요. 국방부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는 말이 있어요. 모든 일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분명히 끝은 있을 거다, 이게 끝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다보니 사회에 나와서도 일을 할 때 나만의 신념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수 있었어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의 문제는 내 마음의 문제기 때문에 내가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교수님으로서 학과 강의에서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고 계신데, 그들을 보면 교수님의 젊은 시절이 생각나실 것 같습니다.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요?


생화학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고 싶어 농담이고, 사실 20대에는 방황하고 고민하느라 주저주저하고 못했던 일들이 의외로 많앗던거 같아요. 허비하고 고민하느라 낭비했던 그 시간을 다시 한번 돌려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죠. 많은 시간 방황을 하고 고민을 했던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나한테는 너무 아프게 남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름대로의 인생의 계획을 가지고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싶고, 반면에 과감하게 내 인생을 불사를 수 있는 일을 좀 해보고 싶기도해요. 사실 어렸을 때에는 산행하는 걸 좋아해서 좋은 등산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내 인생에서 산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찾는 안식처예요. 대학시절에 힘든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산악반 활동을 하면서 극복했어요. 2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모든 등산가의 꿈 에베레스트나 알프스에 가보고 싶어요.


20대 때 교수님의 꿈과 현재 교수님의 꿈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20대 때의 꿈이라, 저는 항상 역사에 나의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 중에 현재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방법을 찾던 중 논문으로 내 이름을 남기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렇게 연구자의 꿈을 키워나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실험실에 가장 오래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재 제 꿈은 좋은 연구자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20대에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한 것도 내가 했던 연구들도 모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거 같아요. 현재 바이오리더스라는 벤쳐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단순한 자리욕심으로 대리-과장-사장으로 승진하는게 목적이 아닌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연구하는 게 내가 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으로 20대 청춘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20대 청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세가지예요. 첫째는 청춘시절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진실한 사랑을 해보았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나는 20대 시절 가장 힘들었던 군대생활을 사랑으로 견뎌냈어요. 20대의 사랑은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가꾸고 발전시키는 아름다움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둘째는 자신의 가슴 속에 하나의 뚜렷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예요. 어려울 때 자기 자신을 넘을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신념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속에 뚜렷한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고난과 역경에 부딪혀도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세 번째는 남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예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느냐란 것이거든요. 20대 청춘들이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3가지 사랑하라, 신념을 가져라, 신뢰를 받아라를 행한다면 정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내내 아빠 같은 인자한 미소로 따스한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던 교수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교수님과의 대화는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생각할 수 있는 단어 "사랑", 가끔씩 힘이 들 때에 혹은 괴로움에 '왜 나만 안될까'란 생각이 들 때, 다시 해보자라는 작은 용기가 피어날 때에 필요한 단어 "신념", 그리고 사회생활의 기본 덕목 "신뢰" 이 세 단어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젊은 날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무대에 중심에 선 교수님의 이야기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