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대학
■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가지 않은 길
가족을 위해 프로선수 전향
도하 아시안게임 출전 못해
작년 우승한 JLPGA 불참
포인트 유리한 LPGA 출전
6월말까지 랭킹 15위 들면
파리올림픽 출전권 주어져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 않은 길’의 일부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이자 해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미국 시라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을 만큼 잘 알려진 작품이다.
시인은 두 갈래 길 앞에 서서 두 길을 다 걸을 수 없고 오직 하나의 길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의 유한성과 회한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를 읽을 때면 한번 놓친 길은 다시는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므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더욱 신중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프로골퍼 신지애는 지난달 29일 개막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2024시즌 개막전이자 지난해 자신이 우승했던 ‘다이킨 오키드 레이디스 토너먼트’에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협회와 대회 주최 측에 장문의 사과 편지를 보냈다. 대회 챔피언이 이듬해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것은 후원사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대단히 무례하게 비칠 수 있는 행동이다.
신지애의 이런 결정은 어쩌면 자신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올림픽 출전의 꿈 때문이다. 신지애는 대신 같은 기간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오는 8월 개최하는 2024 파리올림픽 골프 출전권을 위해 JLPGA투어보다 세계랭킹 포인트가 더 많이 주어지는 LPGA투어 대회에 나가기로 한 것이다.
남녀 개인전으로 치러지는 올림픽 골프 경기는 세계랭킹 순으로 출전 자격을 부여한다. 출전 선수는 국가별 최대 2명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15위 내 골퍼는 4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현재 순위대로라면 한국은 고진영(6위), 김효주(9위), 양희영(15위)이 출전할 수 있지만, 양희영과 바로 다음 순위인 신지애(18위)의 평균 랭킹포인트 차는 고작 0.15점이다.
15위 밖에는 신지애 외에도 일본의 골프천재 하타오카 나사(19위), 후루에 아야카(22위), 2년 연속 일본투어 상금왕 야마시타 미유(25위), 사소 유카(26위), 아일랜드의 리오나 매과이어(23위),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신인왕 스웨덴의 린 그랜트(27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애슐리 부하이(29위) 등 호시탐탐 신지애의 자리를 노리는 젊고 강한 챔피언들이 즐비하다.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것은 신지애가 무대를 일본으로 옮긴 이후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부터다. 당시 한국대표팀으로 박인비(3위), 김세영(5위), 양희영(6위), 전인지(8위) 등 4명이 출전해 박인비가 금메달을 땄다. 세계랭킹 포인트 쌓기가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신지애(25위)는 참가하지 못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도 고진영(2위), 박인비(3위), 김세영(4위), 김효주(6위) 등 4명이 출전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당시 국가대표였던 신지애는 두 갈래 길을 놓고 고민했다.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했던 SK엔크린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면서 주어진 프로테스트 면제 혜택을 받고 곧바로 프로로 전향하느냐, 아니면 이를 포기하고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거느냐는 것이었다.
긴 고민 끝에 신지애는 결국 자신의 꿈 대신 가족을 위해 프로골퍼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한국대표팀은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단체전과 개인전 금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여자 개인전 금메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후배 골퍼 유소연이었다.
신지애가 파리올림픽 무대를 밟기 위해선 출전권이 확정되는 6월 말까지 세계랭킹 15위 이내의 순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신지애에게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골프 라운드는 언제든 다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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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최고 수준의 학술연찬', '최고 권위의 진리탐구'라는 목표와 함께 ‘최고 교육의 보편화'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아카데미즘은 '최고 수준의 학술연찬', '최고 권위의 진리탐구'라는 목표와 함께 ‘최고 교육의 보편화'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학술의 심오한 연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통해 건전한 정신과 이상을 배양시키고자 한 것이다. 국민대학교가 야간대학으로 출발한 것은, '생활상 사정의 소치로 주간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허다(許多)한 구학(求學)의 청년에게 최고 학술을 연구하는 기회를 주어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추구'하는데 있었다. 이 점에서도 국민대학교는 '국민의 대학'이자 '민족의 대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