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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플러, 퍼터 바꾸고 ‘자신만만’… 7승 더하고 올림픽金 ‘승승장구’[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날짜 2024.11.08 조회수 66

 

 

■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퍼터 교체의 심리학

윈덤 클라크·리키 파울러 등

퍼터 교체뒤 번갈아 우승 행진

아널드 파머는 평생 3000여개

타이거 우즈는 한가지 퍼터만

퍼팅 성공의 심리요인은 자신감

낙관적인 골퍼 ‘플라세보’ 효과

 

어떤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이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꼭 집어 어느 하나가 원인이라기보다 다양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골프도 비슷하다. 어느 날 갑자기 공이 잘 안 맞거나 성적이 나빠지면 답답한 마음에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복잡한 골프에서 그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대개 골퍼들은 애꿎은 장비를 탓한다. 보통 주말골퍼들은 공이 안 맞으면 드라이버를 바꾸고, 프로들은 퍼터를 바꾼다.

 

그런데 종종 퍼터를 바꾸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 미국의 스코티 셰플러다. 셰플러는 올 시즌 마스터스 2연패를 비롯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7차례나 우승을 거두고, 여기에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과 플레이오프인 페덱스컵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셰플러는 시즌 초반만 해도 분위기가 썩 좋진 않았다. 출전한 5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었다. 드라이버와 아이언 등의 볼스트라이킹은 좋았지만 퍼팅이 문제였다. 셰플러는 6번째로 출전한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을 앞두고 퍼터를 바꿨다. 공교롭게도 셰플러는 이후 갑자기 다른 골퍼가 됐다. 퍼팅 이득타수 순위가 5위(4.347타)로 급상승, 곧바로 우승까지 차지했다. 직전 대회 셰플러의 퍼팅 이득타수는 -4.358타. 본선에 진출한 51명 중 꼴찌였다. 셰플러가 퍼팅 이득타수 순위에서 10위 내에 든 것은 2년 만이었다.

 

셰플러뿐 아니다. 지난해에는 퍼팅 때문에 오랫동안 성적 부진과 슬럼프로 고통받았던 미국의 윈덤 클라크, 키건 브래들리, 리키 파울러 등 세 명의 골퍼가 똑같은 모델의 퍼터로 바꾸고 난 뒤 3주 연속으로 번갈아 가며 우승을 차지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골퍼 중에는 유난히 퍼터를 자주 바꾸는 이가 있다. 한국의 박인비나 고진영은 부진에 빠질 때마다 퍼터를 바꾸며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 미국의 필 미켈슨과 아널드 파머(1929∼2016)도 성적이 나쁠 때마다 수시로 퍼터를 바꾸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파머가 평생 사용했던 퍼터는 3000개가 넘는다. 반면 43승으로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최상호나 골프 사상 유일한 그랜드슬램(한 해 4대 메이저대회 모두 우승) 기록자인 바비 존스(1902∼1971), 메이저대회 최다승 기록(15승)을 가진 잭 니클라우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같은 골퍼들은 평생 같은 퍼터를 사용했거나 퍼터를 거의 바꾸지 않는 쪽이다.

 

퍼터를 바꾼 후 그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 않거나, 퍼터를 바꾸지 않고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골퍼들을 보면 성적의 변화가 꼭 퍼터 교체 때문이라기보다 흔히 ‘플라세보(위약) 효과’라고 하는 심리적 현상의 결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플라세보는 성경 시편에 나오는 ‘내가 기쁘게 해줄 것이다’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로 중세 기독교에서 죽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저녁 기도문의 첫 구절에 인용돼 쓰였다. 현대 심리학과 의학에서는 설탕이나 식염수처럼 치료 효과가 전혀 없는 약제를 진짜 약으로 속여 섭취하게 했을 때 환자의 증상이 완화되거나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관련 연구에 따르면 스포츠에서도 플라세보 효과는 실재하며 그 효과도 상당한 것이 확인됐다. 특히 낙관적인 성격이나 잘될 것이란 믿음이 큰 사람일수록 플라세보 효과가 더 잘 나타났다. 퍼팅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은 바로 자신감이다. 미신이 되었든, 과학이 되었든, 혹 퍼팅으로 혼자 속앓이하고 있는 골퍼라면 퍼터라도 한번 바꿔볼 일이다.

 

스포츠심리학 박사,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