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기업가 정신 대학
1991년에 들어서 교상 건립 문제가 한층 고조된 가운데 1992년 6월 교상건립추진위원회 및 교상건립학생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하여 ‘쌍용’이 결정되었고 교상건립추진위원회가 이를 확정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이후 교상 디자인과 명칭을 공모하는 한편, 건립기금마련을 위한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개교 47년 만인 1993년 6월 모든 국민인의 숙원이었던 교상, 용두리가 지금 자리에 서게 되었다.
우리학교의 교상, '용두리'의 역사를 되새겨보며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최고 수준의 학술연찬', '최고 권위의 진리탐구'라는 목표와 함께 ‘최고 교육의 보편화'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아카데미즘은 '최고 수준의 학술연찬', '최고 권위의 진리탐구'라는 목표와 함께 ‘최고 교육의 보편화'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학술의 심오한 연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통해 건전한 정신과 이상을 배양시키고자 한 것이다. 국민대학교가 야간대학으로 출발한 것은, '생활상 사정의 소치로 주간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허다(許多)한 구학(求學)의 청년에게 최고 학술을 연구하는 기회를 주어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추구'하는데 있었다. 이 점에서도 국민대학교는 '국민의 대학'이자 '민족의 대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