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기업가 정신 대학
성곡도서관은 정릉캠퍼스에 문을 연 지 20여 년 만에 지금 자리에건립되었다. 1971년 이전할 당시에는 1호관(현 본부관) 그 후 2호관(현 북악관) 그리고 1979년 9월에 중앙도서관(현 조형관)이 준공되면서 각각 그곳에 자리잡았다. 당시 중앙도서관은 문교부의 설치 허용 기준(총학생수의 15%)를 훨씬 상회하는 약 1,200석이고30만 권의 수장 능력의 시설을 갖췄지만 학생 수가 증가하면서 열람실이 협소하고 제반 설비시설이 부족하여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불편은 도서관 신축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신축 예정지가 그린벨트와 군사 시설 내 보호구역에 속했기 때문에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현재의 성곡도서관이 신축, 개관되었다.
국민대와 함께한 성곡동산 24년, 북악인의 안식처로 자리매김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최고 수준의 학술연찬', '최고 권위의 진리탐구'라는 목표와 함께 ‘최고 교육의 보편화'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아카데미즘은 '최고 수준의 학술연찬', '최고 권위의 진리탐구'라는 목표와 함께 ‘최고 교육의 보편화'라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즉 국민대학교의 아카데미즘은 학술의 심오한 연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통해 건전한 정신과 이상을 배양시키고자 한 것이다. 국민대학교가 야간대학으로 출발한 것은, '생활상 사정의 소치로 주간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허다(許多)한 구학(求學)의 청년에게 최고 학술을 연구하는 기회를 주어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추구'하는데 있었다. 이 점에서도 국민대학교는 '국민의 대학'이자 '민족의 대학'인 것이다.